M
생각을 해보니 어처구니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사실 내가 착각했고 속고 있다는 걸 깨닫는 거죠.
M
어쩌면 성장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받아드리는 관점은 결국 모든것을 낙관적으로 받아드리는 허무한 자세가 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M
'겉과 속이 다르다면 그렇다면 그걸 어떻게 받아드려야 하는가? 그건 생존인가?'
M
최근 JY와의 대화에서 한 가지 깨달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너무 많은 공감은 위험할 수 있다인 것 같아요.
M
JY, 어떻게 보면 시각물을 다루는 사람은 보여지는 것을 다루기에 누군가에게
평가받기가 쉬운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러한 평가는 정말 가슴 아픈 일인것 같기도 하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JY
저는 지금 비판을 너무 안 하고 있다고 생각을해요. 이게 문제가 되는 점은 서로 아무것도 안 하고 좋다고만 하니까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거죠.
비판이라는걸 받아드리는 방법을 잘 배우는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망할 수 밖에 없죠. 난 저렇게 못 하니까 의견을 내지 않을래라는 태도는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M
공감해요 비판&비평과 비난을 받아들임은 사실 한 끗 차이로 갈리기에 비판을 하는 사람도 비판을 받는 사람도 어려운 것 같아요.
맞아요. 어느 순간엔 어떠한 목적이나 의식, 신념보다는 그러니까 학문을 공부하기 보다는
서로가 피해가지 않는 안전한 선을 만들고 칭찬이라는 감정 아래 제자리 걸음에 있는 경우가 있죠.
역자 (제자리 걸음에 있는 상태가 안 좋은 상태라는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디이고 그리고 무엇을 위해 이 행위를 하는지
정확히 파악하는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음.. 무조건적으로 판단을 내리는게 싫은 것 같아요. 예를들어 말투에도 인식이 생기게 되는 것 같은데
그러한 인식을 저는 벗어내고 싶은 것 같아요. 방법은 여러가지니까요. 어떤 정의를 위해서 싸우는 방법이 여러가지인 것 처럼요. 누군가는 거리에 나가서 싸우고
누군가는 조용히 어디선가 싸울 수 있는 것 처럼요.)
M
이 상황을 어떻게 봐야할까요? 일단 busywork 의미 자체는 '실질적인 가치나 목적 없이 시간만 보내거나 바쁘게 보이기 위해 하는 무의미한 업무를 의미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생산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실제 성과와는 무관하며, 직원들의 동기 부여 저하, 번아웃, 시간 낭비를 유발하여 업무 효율성을 크게 떨어뜨리는 요인이 됩니다.'
라고 chrome 브라우저가 개요로서 말해줍니다.
M
전 이렇게 생각이 들어요.
저는 흰 안전모를 쓰고 삽을 파시는 분이 저만큼의 땅을 판 행위 자체도
대단하다고 봐요. 그리고 저 행위를 어떻게 판단할 수는 없죠. 그리고 그의 상황을 정확하게도 이해할 순 없을테니까요.
알베르 카뮈가 "시지포스를 행복한 인간으로 상상해야한다."라고 말 했듯이
자신의 행위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완전히 알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밀어 올리기를 선택하는 것은 의미없음이 무가치가 아니고 목적 없음이 삶의
부정 또한 아니기 때문이죠. 이 자체가 존엄이 됩니다. 돌을 올리는 행위는 여전히 허무할지라도
허무를 속지 않고 감내하는 의식인거죠.
M
그런데 주의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시지포스(신의 벌을 받은)가 아니라 그 행위를 그대로 동일하게 한다면 그건 어떤걸까요?
고통을 견디는 사람이 문제 제기자가 아니라 모범 사례가 되고 허무한 노동이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성실의 증거가 되어버린다면 그건 구조적 폭력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무언갈 하고 있다는 인식이 체제를 유지하게하는 도덕적 면죄부가 되어버리는.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하냐라고 묻는다면 저는 아마 '방향성'일 것 같아요.
또는 태도(JY와의 대화에서 나눈 키워드)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계속해서 고민하는 그 행위. 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M
사실 제가 그렇게 좋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뭔가 속상한 날이여서 이렇게 적어봅니다. 그러니까 전 그냥 절대적이라고 믿는 행위와 고인게 너무 너무 싫은 것 같아요!
M
제가 김다미 배우님 팬인데 이번에 대홍수가 나와서 지금 넷플에서
보면서 작업을 하려고요,,